'책읽기'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21/09/01 <대망>이야기 1 (2)
  2. 2007/06/23 달구지를 끌고
  3. 2007/03/29 삶 속에 스며드는 책읽기!
---그 때 노부나가는 모든 것을 버리고 감연히 자신의 운명과 맞섰다.-- <대망>을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미처 옮겨적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런데 내가 딱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찍을 수 없으니 앞 뒤 이야기가 같이 찍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체 페이지 사진을 보면 내가 어떤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었는지 첫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어떤 문장이 나에게 인상적이어서 사진으로 남겼는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그런데 다음 사진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성 안 군사들은 두 번째 고둥소리에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히데요시의 결심이 그들에게도 수며들기 지작한 둣 천수각에서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깨알만한 사람들 하나하나에서 민첩하고 터질 듯한 힘이 느껴졌다.-- 이 부분을 확대편집해서 새로운 사진 한 장을 만들어 놓았던 걸 보면. 3년전 나는 마흔 일곱의 히데요시 마음이었다. 깨알만한 사람 하나하나까지 전열로 불타게 하는 히데요시의 열망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다른 문장에 마음이 간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감연히 자신의 운명과 맞선 젊은 노부나가. 그런데' 모든 것을 버리고' 라는 문장이 '모든 것을 걸고' 라는 문장으로 쓰게 되는 건 어인 까닭일까. 나도 모르게 싸움은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거라는 무의식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사람과 모든 것을 버리고 싸우는 사람. 내가 삶의 마디마디에서 누군가와 싸웠던 순간순간에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웠기에 늘 지는 싸움이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버리려고 감연히 운명과 맞섰더라면 .... 책을 읽다가 감명 깊은 부분을 기억하는 습관은 현재의 나 뿐만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도 무기가 됨을 기억해야한다. 삶의 장벽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무기. 지지부진한 삶이여 덤벼라!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감연히 나의 운명과 맞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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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바람 2021/09/05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쩌자고 이런 실수를 했을까!
    지난 9월 1일에 <대망> 이야기 1을 올렸으니 1일부터 오늘 5일까지작은학교이야기를 방문했던 독자들은 '감연히 자신의운명과 맞섰다'를 '광연히 자신의 운명과 맞섰다'로 읽었을 것이다. 한 글자 한 획으로 뜻이 바뀔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모르고 행한 나의 실수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예전 휴대폰 사진에 있던 글을 빠르게 옮겨적느라 휘갈겨쓴 '감연히'를 '광연히' 오독하고 말았다. 그런데 노트북 자판으로 인용구를 쓰면서 내내 고개를 조아렸었다. '광연히'에 자꾸 ?표가 생겼다. 내가 대망 본문의 글자를 잘못 옮겨적었을거라는 생각보다 '광연히'라는 내게 낯선 단어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일을 지내다 아무리 생각해도 '광연히'라는 단어는 여전히 미심쩍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시 옛날 휴대폰을 충전시켜 사진을 찾아 확인해보니 '감연히'다. 이런 불찰을....
    예전처럼 타자로 치고 또는 모니터에 쓴 글을 인쇄해서 다시 읽어보고 하는 게 아니고 글쓰기 페이지를 바로 켜놓고 글을 올리다 보니 오타가 생기기도 한다. SNS로 실시간 소삭을 전하다보면 잘못 눌렀으려니 하는 오타를 보곤한다. 그런 오타가 있어도 내용이 이해가 되면 그려러니하고 지나게 된다. 그러나 작은학교이야기의 글은 '소통'의 의미보단 한편한편 정제된 '글'이라는 의미를 두고 있기에 되도록 오타 없이 쓰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보니 '감연히'가 '광연히'로 며칠간 표기되었던 일이 무겁게 느껴진다.
    바늘 허리에 실 꿰어쓰려다가 생긴 오타를 고치며,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어른들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대망>을 이어가면서 감연히 나의 운명과 맞서보리라!

  2. 나그네 2021/09/07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글 올려 봅니다.
    아이들의 어렸을때 보면 보니까 세삼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조만간 하리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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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지를 끌고

 하리 하우스 방부목 데크에 오일스테인을 칠하고 있는데, 딸이 와서 조릅니다.

 “엄마, 책 하나만 읽어 줄 수 있어?”
 “엄마 지금 바쁘잖아.”
 “엄마, 딱 하나만 읽어 주고 하면 되잖아요.”

 저희끼리 한참을 잘 놀더니 일하는 엄마에게 자꾸 조릅니다.

 사실 이럴 땐 눈 딱 감고 책 읽어 줘야 한다는 얘기를 강남엄마 얘긴지 목동 엄마 특목고 보낸 얘긴 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책을 읽어 달라고 하면 설거지 하다가도 고무장갑을 벗고 읽어 줬단 이야기였습니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이라면 참 좋은 얘기긴 한데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엄마 설거지 다 하고 읽어 줄게.”
 “조금만 기다려, 빨래 요것만 다하고 읽어 줄게.”

 심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지금 일하는 거 안보여!” (소리 꽥!)

 그냥 보내려다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래, 그동안 잘 놀았으니까 한 권만 읽어 줄게.”

 선심 쓰듯 이야기 합니다. 엄마를 뒤에 달고 가는 딸의 발걸음이 너무 가볍습니다.

 딸과 함께 돗자리를 깔아 논 은행나무 밑으로 갑니다. 딸이 동화 책 서너 권을 펼쳐 놓고 읽고 싶은 것 하나를 고르라고 합니다. <달구지를 끌고> -비룡소-를 골랐더니 딸도 그 책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딸과 함께 낙엽이 흩날리는 10월의 한 농가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얼룩소에 달구지를 매어 놓고 미소 짓는 한 농부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농부는 이제 달구지에 차곡차곡 물건을 싣기 시작합니다.

10월이 되자, 농부는 소를 달구지에 매었어.

4월에 농부가 깎아 두었던 양털 한 자루

농부의 아내가 베틀로 짠 숄.
4월에 농부가 깎은 양틀을 물레에 자아 털실을 만들고,
그것을 베틀에 돌려서 짠 숄이지.

농부의 아내가 자아낸 털실을 가지고 농부의 딸이 짠 벙어리 장갑 다섯 켤레.

농부의 아들이 부엌칼로 깎아 만든 자작나무 빗자루.
. . . . . .  . .
. . . . . . . .

달구지가 가득 차자
농부는 아내와 아들 딸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어.

그리고 농부는 소를 몰고 열흘 동안 걸어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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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항구 도시 장터에 동착한 농부는 달구지 안에 실은 모든 것과 달구지와 달구지를 끌고 갔던 소와 소의 멍에와 고삐까지 팔았습니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농부는 가족을 위한 선물을 샀습니다. 무쇠 솥과 수예바늘과 주머니 칼과 앵두맛 박하 사탕 2파운드를 샀습니다.  그리고 농부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럴 때 농부의 마음이 어떨 것 같냐고 물었더니 행복할 것 같다고 대답합니다. 딸과 나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농부처럼 행복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10월이 되면 노랗게 낙엽을 떨굴 은행나무 아래 앉아 있어서 더 행복했습니다.

농부의 딸은 수예바늘을 받아 수를 놓기 시작했고,

농부의 아들은 주머니칼을 받아 나무를 깎기 시작했어.

농부의 아내는 새로 산 솥에다 저녁밥을 지었고,

가족 모두는 앵두맛 박하 사탕을 먹었어.

그리고 농부의 가족은 겨우내 각자의 일을 차분히 했습니다.
3월이 되자, 단풍나무 설탕을 만들었고 4월이 되자, 양털을 깎았고 5월이 되자 감자와 순무와 양배추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6월과 7,8월을 보내고 9월을 지나 10월이 되면 농부는 또 소를 달구지에 맬 것입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세월은 농부 가족이 먹은 앵두맛 박하사탕처럼 추억의 향기를 남기고 인생 속으로 스며들 겁니다. 이 아름다운 흘러감과 반복을 일곱 살 난 딸이 다 느끼랴마는 나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 우리도 하리 하우스에서 작은 학교를 가꾸며 한 해를 흘려  보내고 또 한 해를 받아들이면서 순리대로 살자꾸나. 커다란  은행나무가 투박한 껍질 속에서 여린 잎을 만들고 열매를 영글게 하고 가을이 되면 노란 잎으로 겨울 잠자리를 마련하듯 우리도 세월을 아름답게 흘려  보내자꾸나 ... ...‘

그림동화 <달구지를 끌고>에는 대화가 한 문장도 없습니다. 그저 서사 (敍事)만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도 지루하지 않게 읽힐 수 있는 건 리듬이 있기 때문입니다.  <달구지를 끌고>의 작가 로날드 홀은 시인입니다. 시인이 쓴 동화에는 저도 모르게 잔잔한 음악이 흐릅니다. 시의 운율 (韻律). 번역체 문장이지만 반복과 대구가 만들어내는 운율이 자연스레 흘러나옵니다.

 이 책에서 글이 다 말해 줄 수 없는 부분은 그림작가 바바라 쿠니가 완벽하게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림을 위해 글이 씌어졌는지 글을 위해 그림이 그려졌는지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이 책에서 글과 그림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 수록 이 책이 갖고 있는 조화의 미덕에 감동받게 됩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사람들에 대한 찬양. 그 찬양의 한 구절을 하리하우스에서 만들 계획으로 열심히 붓질을 하고 있습니다. 장마가 오기 전에 데크에 오일스테인을 다 칠해야 할텐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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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도서관에서 ,<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 재미마주 - 권윤덕 지음> 라는 책을 아이와 읽었다.  그림도 좋고 내용도 좋았는데, 특히 옷을 물려 입는 내용에서는 내가 더 좋았다.  옷을 물려 입는 것이 우리집 아이들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물려 입는 다는 것을 자연스레 말해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책을 읽으며 아이와 함께 해 볼 내용을 정했는데, 책과 생활의 자연스런 고리를 만들기 위해 내가 슬쩍 술수를 부리는 것이다.

"  집에 가서 우리도 우리 옷 한 번 그려 볼까?  맞아, 집에 가서 한복 꺼내 줄게 입고 놀아."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비디오 보느라고 그랬나 보다. 오늘은 꼭 한복 꺼내 줘야겠다.

지난 번엔 아이들을 태권도 학원에 보내려고 말을 꺼냈다. 실은 꼬셨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 하나는 태권도 학원을 가겠다고 하고 하나는 안 가겠다고 하니, 안 가겠다고 하는 아이를 이런 저런 말로 꼬셨는데, 넘어가지 않았다. 자기는 태권도 학원 안 가고 그냥 유치원만 다니다가 곧장 과학자가 되겠단다. 그랬더니 태권도 학원 가고 싶은 딸이 내 대신 아들을 설득하는데 말이 이랬다.

"지승아, 옛날에 뉴튼이라는 과학자가 있었는데, 어렸을 때 나무로 만드는 걸 잘 했대. 그래도 과학자가 됐으니까 너도 태권도를 배워도 과학자가 될 수 있어. "

처음엔 뭔 얘긴가 했는데 뉴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였다. 어렸을 때 어려운 환경에서 외로움을 달래고 정성을 들일 수 있는 일로 나무 공예를 했던 뉴턴의 이야기를 과학자가 될 것이므로 태권도를 배우지 않겠다고 하는 동생을 설득하는 근거로 내세운 것이였다. 그것 말 되네.  그런 생각을 해낸 딸이 얼마나 기특했는지 잘 생각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물론 아들은 그 논리에 넘어가지 않았지만, 책과 생활을 연결 지어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한 나의 교육이 아이에게 자연스레 스며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앞으로도 아이들과 책을 매게로 더 많은 활동을 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 번에도 말했듯이 나는 위인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전 하리 하우스로 옮기기 위해 다 포장을 해 놓았다. 잔다르크를 불에 태워 죽였던 시대의 억지 논리를 아이들에게 말해 준다는 것은 이 세상은 온통 나쁜 사람들로 우글거린다는  얘기를 하는 것 만큼이나 하기 싫은 얘기인 것이다. 그래도 뉴턴의 만류인력의 법칙이란 말을 기억하지 못해도 과학자 뉴턴의 이야기는 내 아이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었으니 기쁘다.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히며 범하기 쉬운 오류가 바로 그 사람들이 어떤 역사적 사실과 관련 있는 가를 외우게 하는 것이며, 너도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은근히 부담주고 종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위인전 속의 인물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위인전은 한 사람의 살아 간 <이야기> 이며, 구체적 시대와 배경이 있는 <동화> 정도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좋다.  동화를 읽고 나선 동화 속 주인공처럼 되라는 부담을 주진 않으니까. 부담 없는 위인전 읽기. 나아가  독후감 같은 것 써야 하는 부담이 없는 책읽기가 우리 아이들 마음을 살지게 하리라 생각한다.

책과 생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교육. 생활 속에서 책의 내용을 체험 해 보는 기회를  주는 교육. 그런 살아 있는 교육을 나의 작은 학교 이야기에서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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