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할 때였습니다.
송곳 끝에 서있는 위태위태한 날들이었습니다.
외로운데 억울하기까지 한 현실에 눌려있었습니다.
그 때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고 신앙이 되었던 구절입니다.
'폭포수' 세 글자는 눈에서 머리로, 머리에세 가습으로 내려꽂혀 요동쳤습니다.
누군가 나를 기만하려 할 때,
폭포수처럼 무서운 것이.
누군가 나를 약탈하려 할 때,
폭포수처럼 무서운 것이.
누군가 나를 조롱하려 할 때,
폭포수처럼 무서은 것이.
이치대로 이루리라.
손리대로 나아가리라.
폭포수처럼 진실이
전개되리라.
<대망>의 오만가지 이야기를 읽는 동안 폭포수처럼 무서운 힘을 얻었습니다.
추신: '폭포수처럼 무서운 것이'라는 대망의 한 구절을 좁고 길쭉한 옥색 포스트잇에 적어서 식탁 유리에 끼워두었습니다.
그 작은 쪽지가 나의 버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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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노부나가는 모든 것을 버리고 감연히 자신의 운명과 맞섰다.--
<대망>을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미처 옮겨적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런데 내가 딱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찍을 수 없으니 앞 뒤 이야기가 같이 찍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체 페이지 사진을 보면 내가 어떤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었는지 첫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어떤 문장이 나에게 인상적이어서 사진으로 남겼는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그런데 다음 사진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성 안 군사들은 두 번째 고둥소리에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히데요시의 결심이 그들에게도 수며들기 지작한 둣 천수각에서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깨알만한 사람들 하나하나에서 민첩하고 터질 듯한 힘이 느껴졌다.--
이 부분을 확대편집해서 새로운 사진 한 장을 만들어 놓았던 걸 보면.
3년전 나는 마흔 일곱의 히데요시 마음이었다. 깨알만한 사람 하나하나까지 전열로 불타게 하는 히데요시의 열망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다른 문장에 마음이 간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감연히 자신의 운명과 맞선 젊은 노부나가. 그런데' 모든 것을 버리고' 라는 문장이 '모든 것을 걸고' 라는 문장으로 쓰게 되는 건 어인 까닭일까. 나도 모르게 싸움은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거라는 무의식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사람과 모든 것을 버리고 싸우는 사람. 내가 삶의 마디마디에서 누군가와 싸웠던 순간순간에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웠기에 늘 지는 싸움이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버리려고 감연히 운명과 맞섰더라면 ....
책을 읽다가 감명 깊은 부분을 기억하는 습관은 현재의 나 뿐만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도 무기가 됨을 기억해야한다. 삶의 장벽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무기.
지지부진한 삶이여 덤벼라!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감연히 나의 운명과 맞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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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탓하지 말고
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라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공자께선 천하를 주유하셨는지도 모릅니다.
2017년부터 시작된 작은학교이야기를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듣고 가셨습니다.
아마도 그 백만인이 듣고간 이야기는 백만가지의 작은학교이야기가 되어 살아났겠지요.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간간히 움트려해보았지만,
때로는 모두의 이야기가 억장을 눌러 말을 잊었었고,
때로는 내 깊은 속 이야기가 무너져 말을 아껴야했습니다.
2021년 공자님 시절엔 상상도 못했을 인터넷으로 하나된 세상이 되어 온갖 이야기가
한순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2천여년 전 공자님의 말씀에 힘입어
작은학교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힘을 내 봅니다.
나를 알리고 작은학교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주유의 첫발을 내딛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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