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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9 첫눈 오시는 순간에

첫눈 오시는 순간에


마음속에

오래 된 사람

새로운 사람

먼 사람

가까운 사람

드문드문 떠오르던 사람

가슴에 새기어놓고 낙엽으로 덮어 논 사람

눈물나게 하는 사람

미소짓게 하는 사람

스쳐갔던 사람

부딪혀 본 사람

두서없이 오가며 두근거리게 하는 걸 보니

첫눈이 오시려나 봅니다.

가슴속에

또렷한 시간

어사무사한 시간

물정도 몰랐던 시절

겁 없이 내딛던  시절

뒤돌아서고 싶었던 순간

가슴을 치며 물리고 싶은 세월

끌어안으면 다시 돌아갈까 싶어지는 세월

소용돌이치며 떠오르는 걸 보니

첫눈이 오려나 봅니다.


첫눈이 올 것 같은 마지막 순간에

물에서 막 건져낸 서리태마냥

반짝이는 인연 하나 솟아나서 곧

오래 갈은 먹물처럼

새까맣게 떨어져 내립니다.

첫눈

오시는

순간에.


2008.11.17



추억


나에게도 추억이 있다네.

화이트와인과 가자미식혜의 소용돌이가 실어다 주는

상승기류가 있다네.

세월이 흐를수록 먹물처럼 스며드는

그리움이 있다네

사랑.

그 유치찬란한 추억이

내게도 있었다네.


지금은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지친 여인의 입가가 벙글어 질 때

추억도 함박꽃처럼 피어나

환하게 뺨에 서린다네.

추억의 똬리 피어난다네.


전생을 돌이킬까

후생을 기약할까

이리저리 뒤척이던 이생의

세월이 있다네.

손톱 밑에 숨겨둔

사연이 있다네.

화이트와인과 가자미식혜의 시너지 효과가 실어온

사랑.

그것도 한낱

취기일 뿐이라네


2007.2.2



화장


빈 방에 앉아

한 뼘 얼굴에

찧고 까부르고 합니다.


까맣게 속눈썹을 치며 세우면

눈동자에 저절로 바람이 붑니다.


입술 선을 봉긋이 그리면

때론 화창하게 웃어지고

저절로 샐쭉하게 다물어집니다.


문지르고 펴 바르고 톡톡 두드리고

한 뼘 얼굴이 호사를 누리는 중에

진짜는 한 뼘씩 멀어져갑니다.


투자한 만큼 대접받는

사회적 계약서.


그래도 내 첫사랑 만날 때만은

흘러간 세월

같은 무채색 살결에

웃을까 말까하는 망설임만  펴 바릅니다.

첫사랑의 해후

그 순간의 화장은.




죽음


가시적이고

직접적이고

촉각적이던

인연의 則物을

추상의 세계로

돌려놓는 과정

그것이 죽음이다.

헤어짐이 슬픔이 아니라

가시화되었던 則物이

사라진 허망함을 슬퍼하는 것이

애도의 근본이다.

2008년 모월 모일


내가 어느 날 이리 썼더이다.

그 날은

생명의 유한함이 가슴에 맺혔었나 보더이다.

또 날을 보내고 오늘은

헤어짐이 슬프다 하고 싶은 걸 보니

내 삶이 덜 거추장스럽고

그대 향한 그리움이 덮쳐왔나 하나이다.


2009.2.11


나의 어머니

     ---찬물에 밥 말아 먹어 본 적 있니? --- 에 부쳐


원래 그런 거야 친구.

식은밥 물에 말아 먹기는

원래 그렇게 끝나는 거야 친구.

물에 말은 밥이 아니라

밥 말은 물을 먹으려고

한 숟가락 푹 두 숟가락 푹

그렇게 푹푹 말아 먹는 거거든.

미칠 것 같은 지열과

끓어오르는 부아를

막 길어온 샘물로 식혀보려고

풍덩 한 덩이 떠 놓는 거야.

숟가락 세워 툭툭 끄고

숟가락 눕혀 꾹꾹 말아

죽을똥 살똥 몇 숟가락 먹다가

그만 울컥 치밀어 오를라치면

뿌얘진 국물 한 번 후루룩 마시고

시답잖게 숟가락 내려놓는 거야.

그러다 또 울컥 뭐 하나 치밀어 오르면

밥알 헤 풀어진 뿌연 물사발 분연히 들고 일어나

소 멕일 찌끼통에 들이붓는 거야.

확 털어 붓고 나면

덜 억울할게야.

쇄골 밑에 앙가슴 탕탕 치지 말고

친구야

개수대 물구멍에라도 확 쏟아 부어버려.

누가 아니?

덧정 없는 세상도

확 뒤집혀질지.

밥 말은 물그릇처럼.


2009.6.22

   


벗들을 떠올리며 규정짓기 1


돌보는 것.

필요할 때 부르라고

존재해 주는 것.


아끼는 것.

바라만 보고

차마 못 만지는 것.


사랑하는 것.

아무 때고 기대라고

옆에 있어 주는 것.


추억하는 것.

스스로 때를 알아 피고 지는 꽃처럼

제 흥에 피었다가

제 풀에 지는 것.


사는 것.

좋을 때를 바래 해야 할 일을 하며

참고 참는 것.




벗들을 떠올리며 규정짓기 2


대작


권커니 잦거니

주거니 받거니

너의 시로 나를 보고

나의 시로 너를 추키고



자작


따르거니 마시거니

놓거니 따르거니

나의 시로 나를 보고

나의 시로 나를 재우고



시비


밀거니 스치거니

치어다보거니 흘기거니

너의 삶에 다리 걸고

나의 삶에 뒤통수 치고



조율


밀거니 당기거니

돌아보거니 웃음짓거니

기우뚱할 때 잡아주고

밋밋할 때 건드려주고


2009.9.29



亡家


“병국아!”

“어머이!”


아이고 야야 병국아

-어머니, 삼라만상이 다 보입니다.

--삶과 죽음의 길이 예 있음에 저히고


아이고 야야 병국아

-어머니, 처음과 끝이 스쳐 보입니다.

--나난 가난다 말도 못다 이르고 가나니있고.


병국아아아

-어머니


야야 병국아

-어머니, 내 이토록 어머니의 자식이었습니다.

--어느 가잘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떠딜 닙다이


엄마다 병국아

-시작도 끝도 어머니의 자식입니다.

--하단 가재나고 가는 곳 못댜온뎌


엄마가 왔다.

-어머니, 저는 이제 햇살입니다.

--아으 미타찰에 맛보올 내


엄마다, 엄마가 왔다 병국아

-날개를 편 햇살입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스며들겠습니다.

 내 아내의 가슴에도 스며들겁니다.

 내 자식들의 가슴에도 스며들겁니다.

 내 인연 삼라만상의 만물에 스며드는 햇살입니다.

--도 닦아


병국아, 병국아

-햇살입니다. 어머니.

--기드리고다.


엄마다!

어머이...


2009~201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