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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27 고비
  2. 2013/08/27 아들의 그늘막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일단 궁금한 건 못 배기는 성질인 지승이.

호기심이 많은 만큼 아는 것을 반복 하는 건 너무나 싫어하기에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가 싫은 지승이. 시험시간에 계산기를 맘대로 쓰려면 적어도 대학 이상은 돼야 하는데, 초등학생인 지금 공책 가득 써야하는 사칙연산의 혼합계산이 얼마나 지루할지 상상이 갑니다. 그래도 나머지 공부는 하기 싫은지 혼합연산을 연습하고 갔습니다. 그것도 분수와 소수가 섞여있는 혼합연산이니 오죽 귀찮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과정도 다 무난할 만큼은 거쳐야 하는 것이니 해야지요.

5학년 2학기가 시작될 무렵 지승이가 왜 피아노하고 바이올린을 배워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 중 피아노는 매일 조금씩 연습하는 것이 의무였는데, 아마 많이 싫어졌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너무 진지하게 말하지 않고, 그렇다고 영 거짓도 아닌 말로 얼럴뚱땅 넘기려고 장난스럽게 대답했습니다.

“ 지승아, 니가 커서 피아노로 멋진 곡을 차악 치고, 바이올린을 멋지게 켜면 얼마나 멋있겠니. 그럼 너 여자들한테 인기 짱이다! 피아노 치는 남자. 얼마나 멋진데!”

여기까지 하고 아들을 보니 안되겠다 싶어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사람들 중에는 취미로 음악을 했던 사람들이 많데. 아인슈타인도 바이올린을 켰다나? 피아노를 쳤다나.......”

“겨우 그거야? 겨우 그런 거 때문에 나한테 피아노를 배우라는 거야?”

아들은 엄마의 대답을 기막혀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난 위인이 안될거라구!”

매일매일 20분씩 피아노를 쳐야 한다면 아들은 위인이 되는 것도 싫은 겁니다.

당황하고 미안했습니다. 악기는 어느 정도 기능을 갖추어야 즐길 수 있다는 믿음에 기능을 익히라고 시킨 것인데, 아들은 너무도 지겨웠던 겁니다. ‘피아노 20분’ 이란 말 자체가.

그런 아들을 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맞아. 우리 역사의 위인들은 얼마나 큰 고초를 겪으며 살았는가. 그래 아들아, 넌 큰 고초를 겪는 위인이 되지 말고 평범하게 행복한 사람이 되어라.’


그 이후 아들에게도 딸에게도 ‘피아노 20분’이란 숙제는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씩 하는 피아노 교습은 계속 했습니다. 학교 방과 후 바이올린도 두 시간 연속 수업 받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 해서 한 시간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피아노도 그리 지겨워하지 않고 바이올린도 두 시간을 다 채우고 오는 겁니다. 바이올린 끝나면 나눠주시라고 선생님께 매주 간식을 보냈습니다. 모닝빵으로 미니 햄버거도 만들어 보내고, 김밥도 보내고 겨울엔 찐빵도 따끈따끈하게 쪄서 보내고, 특식으로 막 구워낸 꿀호떡도 바이올린 끝나는 시간에 맞춰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그 간식 먹는 재미에 수업을 다 하고 오는 겁니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간식 먹는 재미를 톡톡히 보았구요. 그렇게 5학년 2학기를 보내더니 6학년이 되어선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싫다는 말 안하고 잘 다닙니다. 요즘엔 피아노로 영화음악을 연주하는 재미가 붙어 스스로 곡을 외우고 반복 연습도 합니다. 바이올린은 강사선생님께서 직접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십니다. 그 간식 받는 재미에 또 열심히 다닙니다.

그렇게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엄마와의 갈등을 끝내고 지금은 스스로 연주의 재미를 아는 시기를 맞았습니다. 한 고비를 넘긴거지요. 그렇다고 연주가 객관적으로 훌륭하다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앞으로  또 비슷비슷한 고비를 넘기며 지승의 인생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친구가 되고 희망이 되고 여유가 되고 나아가 예술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고비!

그건 넘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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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이는 5학년 1년 동안은 해리포터와 함께 살았습니다. 디브이디도 해리포터만 보고 책도 해리포터만 읽고 놀이도 해리포터 마법놀이만 하고 놀았습니다. 그건 지윤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이서 늘어놓는 마법지팡이 때문에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하리하우스 방범을 위해 방어마법을 걸어놓던 지윤이의 진지한 모습을 떠올리며 짜증을 넘겨버리곤 합니다. 한번은 평동 도담철물점엘 갔는데, 마법사가 타고 다닐 만한 멋진 대나무 빗자루가 있어서 사주었습니다. 퀴디치 게임을 할 때 쓰라고요. 다른 데 돈 쓰는 건 아까운데, 마법빗자루를 사 줄 때는 아깝지가 않은 게 신기했습니다. 아마도 해리포터 마법세계의 힘이 나에게도 미치나 봅니다.

현진이 누나네 집에 갔다가 해리포터 스티커북을 선물 받고 한참을 잘 놀았습니다. 스티커북에 있는 편지지로 호그와트에서 자신들의 입학을 허가하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간직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특히 지승이가 어찌나 마법세계에 가길 원하던지, 엄마인 나도 마법세계가 부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승이가 말합니다. 만약 호그와트 전투에 내가 나간다면 엄만 허락할거야?  아이의 진지함을 알기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어느날 지승이가 모기를 손으로 휙 잡더니 하는 말, ‘햐아,  나는 수색꾼 해도 되겠지?’

내가 해리포터를 읽으며 우리 아이들이 언제 커서 해리포터를 읽을까 했는데, 어느새 나보다 더 해리포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아이들이 커서 반지의 제왕을 읽을까 했는데, 이젠 나보다 더 중간계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딸은 나를 넘어서 <끝없는 이야기>와 <비밀의 도서관>과 <모모>를 읽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들은 학교에 가방  앞주머니에 너덜너덜해진 반지의 제왕 한 권을 넣고 갔습니다. 쉬는 시간 틈틈이 꺼내보는 반지의 제왕이 분수의 혼합계산을 하느라  복잡해진 머리를 잠시 식히는 시원한 그늘막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어 방정식과 근의 공식을 들고 씨름 할 땐 어떤 책이 그늘막이 되어줄지 궁금합니다.

아들과 딸의 가슴속에 정의와 지혜와 사랑을 심어 줄 좋은 책을 장만해 두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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