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이야기/긴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7/05/30 방정환과 어린이 날 - 3월에 준 어린이날 선물
  2. 2007/05/24 어머니의 주름치마
  3. 2007/05/18 나의 어머니 "파격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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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솔농원에서 지윤이와 지승이 소마구간 가는 길...


방정환과 어린이 날
     -3월에 준 어린이날 선물

내 기억에 - 나는 70년대에 어린이였습니다.- 어린이날이 좋았던 것은 시내버스가 무료였다는 것입니다. 그 때도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노래를 불렀고 어린이 날엔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아마 어린이 날 선물을 받는 아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어린이와 청소년이 아웅다웅 -이러면 맨날 싸우기만 하는 남매들 같지만 싫은 옹기종기 노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모여살던 상황이라 선물 같은 것을 주고 받는 문화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우리 집은 그랬습니다. 아마 그 시절을 보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린이 날 선물이란 생소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누구네 집 누구는 선물을 받았는데 나는 못 받았다는 것 때문에 기가 죽거나 슬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기가 죽은 기억이 없는 걸로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어린이날 선물에 아이들을 휘둘리게 하지 않았던 겁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먹고 살기 힘든 시대였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어떤 기념일이든 명목을 만들어서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팽배해 있습니다. 팽배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면 지나치다는 말도 되겠지요. 오죽하면 스승의 날 선물이 말썽이 되어 휴교하는 학교가 생겼겠습니까. 선물이 아니라 뇌물 때문이겠지만요.

우리 집 행사의 선물은 꽃입니다. 아이들 그림책 <엄마의 생일 선물-교원>을 읽으며 앞으로 우리 집 선물을 꽃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른들께 선물 할 일이 생기면 아이들 손을 잡고 꽃가게로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속에 그리며 꽃을 고르는 기쁨을 아이들이 체화하게 하려고요.  어른들 생일날이면 아이들은 꽃집에 가서 꽃을 한 송이씩 사서 들고 오는 일을 아주 즐거워합니다.

반대로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은 꽃으로 한정하기가 참 힘들더라고요. 크면서 갖고 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무조건 막을 수가 없어서 꼭 필요한 물건이면 생일날이나 어린이날 사 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날에 어린이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하는 어른들이 만든 분위기가 아이들 생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어린이날을 선물 받는 날이라는 공식이 은연중에 성립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1년 365일 내내 어린이 날이예요.’하는 나의 주장은 선물을 주고 싶어 하는 어른들에게도 선물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도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올 3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마트 안에 있는 가정의학과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아이들이 장난감 진열대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그렇게 장난감에 집착하거나 떼를 쓴 적이 없는 아들아이가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겁니다. 가면과 레이저 총이 함께 들어있는 장난감을 잡고 놓지를 않는 겁니다. 그래서 총과 같은 장난감은 함부로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고 했더니 절대로 사람에게는 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모양이 총이라기 보단 손잡이가 열십자 모양으로 된 길쭉한 막대기라는 느낌이 총에 대한 거부감을 많이 누그러지게  했습니다. 더군다나 감정에 따라 가면의 색이 변한다는 말에 나의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면을 쓰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 감정에 따라 가면의 색이 변할 수도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지요. 그런데 하나 걸림돌이 ‘너희가 원한다고 다 사줄 수 없다’는 평소의 원칙에 어긋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어린이날 선물로 사 준다고 해라.’였습니다. 어린이 날은 선물 받는 날이 아니라고 알게 하려는 교육적 견지에서 불 때 그리 바람직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꺾으면 의욕상실이 오거나 성격에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도 생각이 났습니다. 아들아이가 뭔가를 사 달라고 그렇게 떼를 쓰는 일이 처음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뭔가 적당한 해결책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하는 법을 가르치고 약속을 지키는 일을 가르치자’ 라는 생각에 가면을 사주기로 했습니다. 우선, 가면을 언제 사느냐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기다렸다가 어린이날 살 것인지 아니면 오늘 살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했지요. 아이들이 당연히 오늘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린이날이 와도 선물을 사 달라고 조르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자고 했더니 그러마고 하더군요. 그래서 조그만 종이에 이렇게 썼습니다.

-어린이날 선물로 가면을 사고 어린이날엔 아무것도 사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

그리고 그 밑에다 자필 서명을 하게 했습니다. 삐뚤삐뚤 쓰면서 이런 게 계약이구나 알았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집에 와서 식구들에게 공표하였습니다. ‘어린이날 선물을 미리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어린이날 선물은 없습니다.‘ 라고.

어린이날 선물로 진짜 바이올린을 갖고 싶다던 딸마저 -갖고 놀며 친숙해 지라고 중고 바이올린을 하나 구해주려 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가면을 사고 말았지만 어쨌든 가면을 갖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 맘도 좋긴 하더군요. 한동안 집에서 유치원 버스 타러 가는 길까지 쓰고 가기도 할 정도로 좋아하더니 정작 어린이날엔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자필 서명이 들어있는 종이 쪽지는 어린이날이 한참 지난 후까지 안방 거울에 딱 붙여놓았었지요. 그런데 집에 오는 길에 문방구 진열대에 꼭 한번씩 들러서 눈요기 하는 아이들이 묻는 거예요.

“엄마, 우리 생일날은 얼만큼 남았어요?”
어떨 땐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엄마, 어린이날 얼만큼 남았어요?”
그래서 어린이날은 이미 지났다고 했더니
“아니, 이번 말고 그 다음 어린이날!”

하는 겁니다. 얼마나 크면 어린이날은 선물 받는 날이 아니라는 걸 납득 시킬 수 있을까요. 그때 쓰려고 <한국사 편지 5 - 웅진주니어>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 어린이날의 참 의미에 대해 엄마와 함께 이야기 할 날을 준비하며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에게 주는 글을 적어 봅니다.


어린 동무들에게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어른에게는 물론이고 당신들끼리도 서로 존대하기로 합시다.
뒷간이나 담 벽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 같은 것을 그리지 말기로 합시다.

꽃이나 풀을 꺾지 말고 동물을 사랑하기로 합시다.
전차나 기차에서는 어른에게 자리를 사양하기로 합시다.
입은 꼭 다물고 몸을 바로 가지기로 합시다.

아이가 초등 4학년 이상이면 위 글의 한 문장 한 문장의 속뜻은 무엇일까 토론을 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현실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보는 일도 의미 있는 활동이지요.
방정환 선생님이 어른들에게 하는 약속도 있습니다.

어린이 날의 약속

오늘 어린이날, 희망의 새 명절 어린이날입니다. 우리들의 희망은 오직 한 가지 어린이를 잘 키우는 데 있을 뿐입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내 아들놈, 내 딸년 하고 자기 물건같이 여기지도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하십시오.
어린이를 결코 윽박지르지 아십시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 주십시오.
항상 칭찬하며 기르십시오.

어린이날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는 잣대로 위의 두 글을 새기면 좋겠다.

참, 어린이 날 선물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적은 종이를 넣은 지갑을 분실했었는데, 다행히 어떤 할아버지께서  파출소에 맡기셔서 찾게 되었다. 파출소에 계시던 경찰 아저씨가 좀 황당해하며 그 쪽지에 대해 묻기에  사연을 이야기 해 드렸다. 지독한 엄마라고 생각했으려나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으려나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 서약서 덕에 이번 어린이날은 조용히 넘어갔다.

참, 어린이날 하리하우스를 방문했었는데 오가는 길에 아빠가 차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태워주셨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면서 좋아했다. 딸아이 하는 말, ‘아빠가 준 선물이 제일 좋아요.’하는 거다. 뭔지 궁금하신 분은 따로 문의하시길. 왜냐하면 내공이 쌓인 사람만 줄 수 있는 선물이므로.


                   
어머니의 주름치마


나 어릴 때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한번은 엄마가 어딜 가셨었고 나는 엄마가 오길 기다리며 대추나무에 올라가 놀고 있었다. 아직 해가 있을 때 엄마가 오셔서 나를 찾아 뒤안으로 오셨는데, 그 때 엄마가 입으셨던 파란색 주름치마가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윗도리 모양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흰 블라우스를 입으셨건 것 같다. 늘 논밭에서, 부엌 아궁이 앞에서 만났던 엄마의 모습과 달라 그 깊은 인상이 선명히 남은 것 같다. 어쩌면 어머니의 주름치마와 흰 저고리를 기억하는 건 그날  한 번의 깊은 인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보아온 어머니의 모습이 각인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마도 그 옷이 다 낡을 때까지 외출할 때마다 파란 주름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으셨을 테니까.

세월이 흘러 어머니의 허리는 점점 굽어지고 얼굴은 검게 주름지게 되셨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 위로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고 단아하게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어머니의 파란 주름치마와 흰 저고리가 내 마음에 떠오를 때면 난 나를 돌이켜 본다. 내 딸은 나중에 나의 어떤 모습을 기억할까. 아마 내 딸은 내 의복 중 특별 한 것 하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 많은 옷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 젊은 시절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절이 다르고 사회 환경이 다르니 어찌 내가 외출복 한 벌로 아이들 마음에 각인 될 수 있으랴. 다만 내게 바램이 있다면 내 아이들에게, 특히 내 딸에게 단아한 어머니로 기억되는 것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고 그저 ‘단아함’에 대한 인상을 남겨주고 싶다. 내 마음속의 어머니처럼.

요즘은 아이들도 어른들도 옷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면 되는 옷이 아니라 날개로서의 옷의 기능이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평소 의복의 의미를 제대로 정립해 놓지 않으면 사치해지기 쉽다. 내면에 당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치를 꿈꾸게 된다. 결국 의복에 대한 관점 하나에도 내면이 드러나는 것이다. 내 아이들을 내면이 당당한 아이들도 키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 옷은 대부분 물려 받은 옷들이다. 하지만  작아서 못 입게 된 옷들 중에 차마 버리기 아까운 것도 많다. 누굴 물려줄까 하고 싸 놓았지만 마땅히 물려 줄 데가 없다. 오리털 잠바 같은 것은 차마 버리기 아까워서 (물론 소매 끝이 조금 낡긴 했지만, 오리털 잠바의 참 기능은 소매에 있지 않고 보온성에 있기 때문에 차마 버리지를 못했다.) 놔 두었다. 북한 어린이들에게 보내줄까 하고 경로를 알아 보았지만 적당한 방법을 못 찾았다. 인터넷에 북한에 옷 보내기 사이트가 있었지만 새 옷을 보내는 것 같았다. 참, 내가 북한 어린이들을 생각한 건 북한의 경제를 고려하여 생각한 건 아니다. 단지 북쪽이 남쪽보다 더 추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주최하는 한강 뚝섬 토요 장터에 나가 팔아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 물물 교환의 현장도 체험할 겸 또 우리에게 필요한 물품도 구입 할 겸.

실은 나는 중고 상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출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처가 분명한 물건들은 기쁘게 물려받고 잘 쓴다. 특히 아이들 물건은. 한 계절이 다르게 크는 아이들을 키울 땐 물물교환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돈을 아끼는 차원에서라기보다는 지구의 자원을 아낀다는 차원에서 어린이 용품을 물려 쓰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하리 하우스의 넓은 방 하나는 어린이 용품 물물교환의 장으로 쓸 계획을 세워야 겠다. 차마 버리기 아까운 내 아이들 물건을 갖다 놓고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가고.

작은 학교 1층에 마련할 도서관, 음악실, 놀이방, 자유체험 학습실 외에 물물교환실도 마련해야 겠다. 헌 옷을 놓고 헌 옷을 가져가는 중고 시장이 아닌 추억을 놓고 새로운 추억 하나를 가져가는 아름다운 방 하나를 꼭 마련해야겠다. 그 방을 찾는 좋은 사람들과 파란 주름치마에 흰 저고리 입으신 내 어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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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직접 만드신 부뚜막과 가마솥에서 고사리 삶는 어머니^^

나의 어머니 ---- 파격의 미

고등학교 시절 국어책에 나온 수필 한 편에 대한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동양화의 난 (蘭)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여린 선이지만 꼿꼿하게 위로 뻗은 난초 잎들 사이에서 휘영청 구부러진 튀는 난 잎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래로 휘어진 잎이 풍기는 미학을 수필의 작가는 ‘파격 (破格)’ 이라 하였다.

논리적이고 계획적이고 치밀해야 하는 나의 일상에서 가끔 화두처럼 떠오르는 말 ‘파격의 미’.

그저  가방 들고 학교나 잘 다니면 단 줄 알았던 시절에 느꼈던 파격 -격식을 깬다- 의 미학이 오늘 인생 고개를 몇 번 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의 모습인 현재의 내가 느끼는 미학과 어찌 같으랴. 여고시절 생각했던 파격은 어쩌면 반항의 결정이었다면 지금 생각하는 파격은 연륜의 담대함에서 비롯된 것이거늘 어찌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하긴 지금도 나의 실상은 파격의 담대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내 안에 어리석음이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정 어머니를 보고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뗘올리며 난 인생의 절도를 제대로 아는 분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 바로 그 ‘파격의 미’를 이야기 하려 한다.

셋째 오라보니 내외와 오라버니 지기 몇분이 친정집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오라버니가 구상중인 ‘학운산방’ 터도 둘러볼 겸 한 마을에 네 가구만 사는 동네 구경도 할 겸 봄바람도 쏘일 겸 짜인 일정이었으리라.

손님치레가 어머니차지인 걸 아는 까닭에 오빠 내외는 번차례로 전화를 걸어 삼계탕 준비를 해 갈 것이니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마시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그런데도 어머닌 막무가내로 준비를 하셨다. 장을 보시고 순두부 해 주신다고 두부콩을 담그고 들에서 봄나물을 캐 오셨다.
나도 어머니 힘드실 걸 염려하여

“ 엄마, 엄마가 힘들게 준비해 주시면 젊은 사람들이 마음이 안 편해요. 그냥 와서 직접 해 먹게 놔두세요.”

했다.

내가 잔소리 삼아 핀잔 삼아 -나이 드니 자식들이 부모 핀잔 할 일이 많아지는 데 그런 사이를 나는 사랑한다. -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으신다. 이유는 ‘그래도 그건 게 아니여.‘ 였다.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 ’내 이 시커먼 손으로 해 주는 거 먹고 가는 게 다 추억에 남을 일이여.' 하셨다. 자식들은 현재 어머니 건강을 염려하여 쉬시라 하건만 어머니는 먼 훗날의 자식들 가슴에 남을 추억을 생각하며 뭐든 해 주시려 하신 거였다. 지금의 어머니께서 자식들에게 해 주실 수 있는 건 ‘추억 만들기’ 다.

굳이 고집대로 하시는 게 못 마땅해서 퉁퉁거리다가 안되겠어서 나물 데치는 일을 거들었다. 그런데 냉이와 나물치 사이에 씀바귀가 하나  섞여 있었다

“엄마! 엄마, 이건 씀바귄데? 쓰잖아요!”

“ 아까워서 그냥 뒀어. 누가 먹으믄 뭔 나물이 쓰네 하겠지 뭐.”

어머닌 아무렇지도 않게 슬몃 웃으시기까지 했다. 아들의 손님이라고 정성으로 준비하시더니 정작 도시사람은 싫어할 쓴 나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섞어놓고도 태연하신 것.

순간 내 마음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 바로 이거다. 내 어머님의 파격 (破格) !

냉이 사이에 묻어온 씀바귀 한 뿌리를 어여쁘게 여기고 쓴 나물 한 뿌리를 향기로운 나물 사이에 거리낌 없이 섞을 수 있는 여유. 어머니의 그런 여유는 맵시있게 쪽쪽 뻗은 난초잎들 사이에 휘영청 떨구어 논 난초의 파격이었다. 주름진 얼굴에 언뜻 개구지게 슬몃 웃는 웃음마저도 세월의  덮개 없이는 만들 수 없는 여유로운 파격인 것이다.

난 오라버니나 형님 누구에게서도 쓴 나물에 대한 얘기를 듣지 못했다. 자연산 씀바귀의 그 쌉싸래한 맛을 누가 맛보았을지 생각하면 나도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누구든 그 씀바귀 한 뿌리에 담겨 있는 우리 어머니의 풍류를 알까 싶어 걱정도 된다.

어머니의 “ ‘나물이 쓰구나.’ 하겠지 뭐.” 하시던 말씀이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나도 저런 여유로움을 부릴 수 있을까? 하는 떨림.

내가 삶의 어려움을 겪으며 - 그래서 나를  국화 옆에서의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 누이라 표현했다. 이제야 그 시행의 의미가 절절히 와 닿건만. 여고생들에게 그 시를 줄줄 외우라고 하는 건 그 시를 느끼라기보다는 먼 훗날 그 시를 이해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시를 떠올리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손바닥 때려가며 외우라고 할만한 시이긴 하다. - 생각하는 건 바로 내 어머니다.  내가  내 어머니만큼만 되었어도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다. 내가 내 어머니만큼만 부지런하고 내가 내 어머니만큼만 언어 구사력이 뛰어나고 내가 내 어머니만큼만 지혜롭고 내가 내 어머니만큼만 사람을 부릴 줄 알고 내가 내 어머니만큼만 향학열이 있고, 내가 내 어머니만큼만...... .

내가 귀감으로 여기고 진심으로 존경하며 사랑하는 내 어머님이 계셔서 인생의 처연함을 아는 분의 ‘달관의 미소’ 그 개구진 미소에서 파격의 미를 온 마음으로 느꼈다.

내가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습을 애써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머니가 주신 사랑에 대한 진정한 보답이리라.

그래서 나는 잘 살 것이다. ‘작은 학교 이야기’의 좋은 선생님으로, 작은 학교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자연의 한 모습으로 그리고 작은 학교의 첫 학생들인 나의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파격의 미를 느끼게 할 수 있는 어미의 모습으로 잘 살 것이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의 ‘작은 학교 이야기’의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 리모델링 현장에서 애쓰는 나의 막내 오라버니와 나의 물질적 후원자인 나의 남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