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이야기/짧은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1/12/02 초승달
  2. 2011/05/03 희망의 노래
  3. 2010/12/08 가을에 기리며 (1)

초승달

후벼 파기
좋은 달이네요.
그래도
내마음은
파지 마세요.
이미
닳아빠지고
초승달만큼도
안 남았는걸요.

1. 마흔 여섯

여전엔 동그마니 예뻤었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지금도 충분히 어여쁘다
말해주세요.
그래도 먼저 서러운
얼굴인 걸요.

2. 마흔 여섯

뭐하고 사냐고
묻지 마세요.
밥 먹고 살지요.
어디서 사냐고
묻지 마세요.
하늘 아래 살지요.
행복하냐고 묻지 마세요.
내 나이가 몇인데 그런...

3. 마흔 여섯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
...미리도 괴리도 없이
맞아서 우니노라...
내 나이 마흔 여섯
딱 그러네요.


저녁 땟거리 하다
문득 보인 초승달 하나
기어 내 마음
후벼파고 가네요.
미리도 괴리도 없는 판에
무에 팔게 남았다고
.....

2011.11.10



위로

서런 게 인생이군요.
그래서 위로가 필요한 거구요.
갖은 것을 버리라 하는 게 인생이군요.
그래서 서런 거구요.

부모를 먼저 보내라 하니 서럽군요.
가끔은 자식을 먼저 보내라 하니 더욱 서럽겠네요.
그래서 위로가 필요한 거구요.

버려도, 보내도 남는 게 있어
육신까지 버려두고 가라 하는 게
인생이군요.
그래서 더욱 서러운 건가요?

어제 내가 버린 것이 있고,
오늘 내가 떠나보낸 이 있어도
아직 우리가 남아 있는 건
아마도
누군가 누구를 계속 위로하며
버텨야 하기 때문일 거예요.

생의 마지막에
위로가 되라고...

2011. 11. 22



귀가1.

배웅하는 사람이
뒷모습을 알아볼 때 까지만
일상으로 걷는다.

걷다가,
설핏,
존재가 가려지는 순간에
미련 없이 내딛는다.
희뿌연 안개 속으로.

안중에 없었던 길을 잡아
아무렇게나 걷다가
마음 내려놓고 싶은 자리에
억울한 인생을 부려놓고
운다.
......
그러면 좋겠다
......

안개 자욱한 날,
귀가(歸家)는
수행(修行)이다.

귀가2

암시 없이 닥친 안개.
가슴 속 막연함을 반죽한다.

그리움이 되라고,
외로움이 되라고,
허무함이 되라고.

뒤집어 치대고
접어 치댄다.

반질반질 윤기 도는
반죽 한 덩이
품고 떠난다.

그리움을 지나,
외로움을 지나,
허무를 스쳐지나.

건조한 피부 같은 골목길에
품었던 안개를 털어내고
현관문을 열기에 적당한 시간.

안개 자욱한 날,
귀가(歸家)엔
때가 있다.

2011.11.29

희망의 노래


벗들이여,

살가운 벗들이여.

열 여덟에 불렀던 무구의 노래부터

미혹의 세월 오구의 노래를 들어 준

벗들이여.

장벽 뒤에 펼쳐진 언덕 같은 벗들이여.

새해 첫 날

언덕의 정점에 서서 인생을 구획하노니,

저 만큼은 진보의 땅이고

이쪽은 평화의 땅이고

저쪽은 후회없는 열정의 땅이고

이 앞으로는 거룩함의 땅이 되게 할 것이니,

그 땅에서 그대들을 만나리니.

고귀한 영혼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이리라.

내 지금은 비록

헐벗었으나

그 땅에서...




덮어두기 1


"엄마, 저기 달이예요."

"정말, 낮달이네."

'낮달이 자꾸 보여요.

누구 낮에도 그리운 사람 있나봐요.'

"엄마, 눈이예요. 눈이 와요."

"정말, 눈이네."

'눈 먼 사람의 그리움이예요.

손끝으로 읽으라고  눈이 되어 내리나 봐요.'

"엄마, 추워요."

"정말, 춥구나."

'한정 없는 그리움에 길 떠날까

지나가는 바람이 등을 미네요.

그리움은 저만치 뒤쳐져

동그마니 남았네요.

그 어느날 또다시

낮달이 되고 눈이 되어 내리도록

내버려 두어야지요.

뒷 발치에...'

눈물콧물


눈물을 삼키면

콧물이 나요.

아침밥을 먹다

문득 떠오른 당신 생각을 삼키다

'흐응~' 하고 코를 풀었어요.

눈물을 흘려도

콧물이 나요.

아침 먹은 설거지 하려고

꾸역꾸역 수돗물 틀어놓다가

'흥~ 흐응!' 하고 코를 풀었어요.

눈물콧물 만나는 인연처럼

나와 당신 만난 인연인데

당신 떠나보내고

나만 혼자

눈물콧물 찍어내고 있어요.

             2010 10 5 이 가을 아침에.




11월 23일에 갈 사람이


10월 23일엔 실없는 농담 툭툭 던지며 살았겠지.

실없다는 눈흘김 받으며 속절없는 세월을 살았었지.

11월 23일에 갈 사람이

10월 23일엔 악착같이 코앞을 응시하며 살았었지.

나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을 헤아리며

악착같이 하루를 살아냈겠지.

11월 23일 저녁에 갈 사람이

11월 23일 아침 잠을 깨었었지.

오늘은 왠지 기분이 상쾌해 하며

의심 없이 가을 햇살을 바라보았었지.

11월 23일 저녁에 갈 사람이

11월 23일 온종일 모르고 살았었지.

내일 아침에도 깨어 일어나

아까운 사람들 얼굴 하루 더 볼 줄 알았겠지.

하루 더 볼 줄 알고 허투루 보냈겠지.

이마며 눈이며 코며 입술이며 목소리까지

찬찬히 안 보고

찬찬히 안 듣고

찬찬히 안 쓰다듬고

허투루 보냈겠지.

11월 23일 저녁에 갈 사람이

가는 저녁 그 순간까지 몰아 쉬었었지,

목숨을.

이 세상 목숨을 마지막 놓을 때까지

꿈꾸었겠지.

다음 숨도 쉬어 보리라.

남겨져 애달파 할 모든 인연을 위하여

다음 숨도 쉬어보리라

노력했겠지.

11월 23일 저녁

가시는 그 순간까지.

           2010 10 5 기리며




겨울 산에서


졸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너른 잎, 좁은 잎 모다 떨어져...

썩지도 않고...

썩지도 못한 것들이...

볼썽사납게...

쌓여있다...


먼저 간 이여.

먼저 떠나 누운 이여.

먼저 들어가 백골이 되어 나타난 이여.

육신을 역모한 앙큼한 반란

지풍화수(地風火水)로 흩어져 돌아간 이여.


거기까지만, 거기까지만 보냈나니

그리움은 앞발치에 간간이 걷게 하고

애달픔은 뒷발치에 천천히 걷게 하며

겨울 산을 오르느니

나뭇잎 위로 인생이 불어간다.

       2010. 12. 7

        생각은

             자연과 한 톱니에 물려 돌아간다.

                 인생도 자연인 것을.

                           자연스런 인생인 것을.




믹스커피

나의 외로움은 싸구려야.

눈물 날 만큼 싸구려야.

한 봉에 백원쯤하는 믹스커피 한 잔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살짝 잊혀지는

싸구려 외로움이야.

나의 노동도 싸구려야.

웃음 날 만큼 싸구려야.

어깨 녹아 내리게 빠지는 듯 하다가도

한 봉에 백원하는 믹스커피 한 잔이면

한 몇 분 쯤 잊혀지는

싸구려 노동력이야.

톡! 쏴르르르

뽀그르르 꼴꼴꼴꼴

싸구려로 외로움도 녹여내고

싸구려로 노동을 위로하는

믹스커피 들고 있는 인생들에 끼여

가을 오전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