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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07 참 행복한 겨울이었습니다. (1)

참 행복한 겨울이었습니다.

2011년 가을 이후에서 2012년 봄 이전에 이르는 그 겨울은 조용하면서 한가로웠습니다. 욕심에 벅차지 않았고, 무위에도 자조감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한파에도 적응을 하였습니다. 새벽이면 실내온도는 15도를 넘기기 힘든 수준이었지만, 외부온도와의 차이가 30도 이상 된다는 그 사실에서 인류를 살아남게 만든 문명의 힘을 느낄 수 있었기에 실내온도 15도에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음악을 들었습니다. 시적이고 상징적이고 무한한 상상을 일깨우는 노래 ‘소낙비’를 듣고 또 들었습니다. 음악을 들었다 하기 보단 소낙비라는 노래가 우리와 함께 겨울을 났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듯합니다.

음악은 음악대로 흐르게 놓아두고 책을 읽었습니다. 유리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을 따라 자리를 옮겨 앉으며 읽고 또 읽었습니다. 뛰어노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으며 읽는 것도 참 좋았지만, 다 같이 둘러앉아 읽을 때는 더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고요함 속에서 아이들은 웃고 떠들고 놀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내는 그 모든 소리는 고요함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자연의 음악이었습니다. 적막을 고요로 바꿔주는 음악.

한가롭되 쓸쓸하지 않고 고요하되 적막하지 않은 나날. 나에겐 그 나날의 힘이 하고 싶은 것 보다 해야 할 것이 더 많은 나날을 보낼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오늘을 보내는 힘으로 소진되지 않고 추억이란 자산으로 남아 훗날 인생의 역경을 이겨내는 힘으로 살아날 겁니다.

12월 23일부터 1월 6일까지 14박 15일의 작은학교 겨울 캠프.

12월 23일 밤에 하리하우스 도착해서 곧장 잤습니다.

12월 24일 마당에 있는 난로에 은행잎을 모아 불태우고 놀았습니다. 그런데 난로 속 불꽃은 아이들 성에 차지 않는지 바베큐 통에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놀았습니다. 물론 불씨가 남지 않게 잘 껐습니다.

12월 25일 블루마블을 하고 나는 ‘정리해라’ 했는데, 진슬이는 ‘정리하자’ 라고 했습니다. 나는 알게 모르게 배어있는 명령식 언어습관을 반성했습니다.

12월 26일 앞 개울에 얼어있는 얼음을 깬다고 한참을 놀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곳의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지승이와 진슬이는 개울에 빠졌습니다. 물은 무릎 깊이도 되지 않아서 위험하진 않지만, 와서 옷을 갈아입고 씻고 하느라고 좀 춥긴 했을 겁니다.

12월 27일엔 한지에 그림을 그려서 2012년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진슬이는 틀린 곳을 다른 한지를 찢어 붙여 여러 장을 완성했습니다. 지승인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다시하고 다시하고 하다 결국 한 장을 그렸습니다. 지윤이는 시원시원하게 쓱쓱 그리며 조금 맘에 안드는 부분에 연연해하며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지승이를 안타까워했습니다. 결국 다 채우지 못한 달은 다음에 온 나은이와 선미의 몫이 되었습니다.

12월 28일 마당 구석구석 남아 있는 은행잎을 모아 더 태웠습니다. 아이들은 불태우기가 놀이가 아니라 일종의 노동이란 걸 깨달았는지 협조적이지 않았습니다. 난롯불에 콩을 구워주겠다고 회유책을 썼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낙엽 모으기에 심드렁해진  아이들은 냇물에서 얼음조각을 주워다 뜨거운 난로위에 얹어놓고 그 치직거리는 모양을 보며 즐거워하였습니다.

12월 29일 걸어서 상리의 저수지를 보고 상학을 지나 금수산 초입까지 갔습니다. 놀며 놀며, 다리 아프다고 떼쓰며 한시간 넘게 걸었습니다. 걷는데 지윤이 갑자기 말합니다.

“엄마, 내 눈으로 내 입술이 안보이는 게 섭섭해.”

어제는 난롯불 끄는 데 ‘천연의 침이 있잖아!’ 하더니 오늘은 본인 눈으로 본인 입술이 안보이는 게 섭섭하다니... 걸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저절로 나나 봅니다.

한 시간을 넘게 걸어 도착한 금수산 입구에는  외삼촌이 일하시는 야외데크 공사현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간다고  피워논 모닥불을 끄는 데 지승이와 진슬이의 '천연의 오줌'을 사용했습니다.  포크레인 터 파기 작업에서 나온 칡을 얻어왔습니다. 갈 때는 한 시간이 넘게 걸린 길을 올 때는 차를 타고 10분도 안 걸려 왔습니다.

12월 30일 아이들은 초콜릿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지윤의 글에는 초콜릿에 대한 동경이, 진슬이의 글에는 초콜릿을 보는 사회 경제적 관점이 드러났습니다. 지승이는 글쓰기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냥 인정해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12월 31일 아빠와 진슬이 가족과 귀농해서 사과농사를 짓는 친구 가족이 왔습니다. ‘사과 아저씨’ 덕분에 야구와 축구를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정말 환상인 시간을 보냈습니다. 진슬인 ‘사과 아저씨’의 꾐에 빠져 고추밭에서 겨울바람 맞고 더 매워졌을 고추를 따 먹고 매워 죽는다고 야단이었습니다. 중학생 나은이와 선미는 아이들이 포기한 새해 달력을 완성해서 그려주었고, 진슬이 지승이 용선이와 진하까지 머슴아 넷은 죽이 맞아 놀았습니다.  마르라고 바구니에  널어놓은 칡을 용선이가 맛있다고 씹어 먹자 지승이와 진슬이도 따라 먹었습니다. 먹는 것도 놀이 같았습니다.

2012년

1월 1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고 차 마시고 하다가 새벽이 되었습니다. 매년 금수산에서 해맞이 행사를 합니다. 주차장에서 하는 행사라 어린아이들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맞이를 가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사과 아저씨’ 왈, “맨날 뜨는 해를 뭘 보러 가냐?” 합니다. 농사 짓다가 아마 득도를 했나 봅니다.

새해 아침에 모두를 떠나보냈습니다. 좀 쓸쓸하였는지, 한가해서 좋았었는지 그 느낌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생각으로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이 조금 더 섭섭하다는 것만은 맞는 것 같습니다.

1월 2일 성희와 완이가 놀러왔습니다. 당근을 강판에 갈아 우유와 베이킹파우더, 설탕을 넣어 전기 오븐에 넣어 놓고 약수터에 물을 뜨러 갔습니다. 여름에 진현이 가족이 왔을 때 약수터에 물을 뜨러 가다가 뱀이 있어 되돌아 왔던 길이지만, 다행히 눈밭에는 뱀 걱정을 안해도 되는지라 맘 편히 갔다 왔습니다. 물을 뜨러 갔다 온 사이 당근케이크가 익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당근 케이크에 감동했습니다.

1월 3일 나의 할머니와 외할머니께서 동그란 쟁반상에 콩을 부어놓고 고르시던 걸 생각하며 콩을 골랐습니다. 쭉정이도 고르고 돌도 고르고 벌레에 가장자리를 물어뜯긴 것도 고르고 뒤틀린 꼬투리 조각도 골라냈습니다. 한 줌을 쟁반에 덜어서 버릴 것들을 다 골라내고 둥글고 온전한 콩들만 남겨 되에 부었습니다. 한 참을 걸려 몇 번을 하여도 되가 차지 않습니다. 그래도 지겨운 줄 모르고 숙인 고개가 뻐근하도록 고르고 골랐습니다. 그래서 되를 채우니 낡은 되 안에 가득 찬 까만 콩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 지 각도를 달리하여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지윤이와 지승이는 책을 뒤적이며 놀았습니다. 아직 진득하니 앉아서 콩을 고를 나이는 아닌지, 콩 고르는 일에는 영 관심이 없습니다. 콩타작을 할 때는 도리깨를 들고 달려들던 지승이도 콩 고르는 일에는 손도 대지 않습니다. 콩을 고르다 하루를 다 보냈습니다.

1월 4일 성희와 완이도 떠나고 오롯이 남아 조용조용 보냈습니다. 오래 읽어오던 ‘적과 흑’을 덮었고 이제 무엇을 읽을까 하다 메일러의 ‘나자와 사자’을 집었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해리포터를 읽고 또 읽으며 마법세계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올해 12살이 되었는데, 호그와트로 오라는 편지를 받지 못했다고 실망하기에 호그와트로 가는 편지는 만 12살이 되어야 받는다고 기다림의 여지를 두게 말해주었습니다. 지윤 지승이 상처 없이 호그와트에 대한 꿈을 접을 시간을 벌어두려는 계산입니다. 아니면 우리 아이들이 만 12살이 되면 진짜로 아무도 모르게 마법부에서 보낸 입학허가서를 문 부엉이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

1월 5일 외할아버지께서 단양 눈썰매장에 데려다 주셨습니다. 튜브를 타고 올라가는 리프트가 없어져서 걸어올라 갔습니다. 썰매도 튜브로 바꼈습니다. 썰매장 크기도 반으로 줄었는데, 성인용 슬로프를 폐쇄하고 중간 높이의 어린이용 슬로프만 사용했습니다. 그래도 옛날보다 속도는 더 나는지 아이들은 무척 재밌어했습니다.

1월 6일 정리를 했습니다. 지윤이 방과후 수업이 있어서 등교를 해야 하는 데다 그동안 어지른 것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계획을 하고 시작한 대대적인 정리였습니다. 나와 있던 물건을 제자리에 넣어 두는 일만 하는데도 한 참 걸렸고, 아이들이 커서 필요 없다 싶은 물건은 고민하고 판단하고 분리하여 버리는 데 또 한 참 걸렸습니다. 정리를 마치자 지윤이가 말합니다.

“그 전엔 어린이 집 같았는데, 이젠 한 중학생 쯤 된 집 같아요.”

아이들이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집도 더불어 한 살 더 먹었습니다. 언젠가 우리 집은 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고 또 언젠가 대학생 쯤 되어 보이겠지요. 그리고 더 나이를 먹고 먹으면 다시 어린이 집처럼 보일 날도 오겠지요. 온갖 블록과 장난감으로 가득 찬 어린이 집으로 회귀하겠지요. 언젠가는....

개학을 하고, 시답잖은 등교를 며칠 하고, 또다시 봄방학을 맞아 하리로 갔습니다. 겨울 방학의 아쉬움은 봄방학으로 달랬지만, 봄방학 다음엔 한참을 기다려야 여름방학이 되므로 그저 원 없이 놀게 해주었습니다. 세준이도 같이 봄방학을 보내게 되어 더욱 즐거웠습니다.

아이들은 주로 데크에서 놀았습니다. 집안의 온갖 살림을 다 꺼내어 데크에 각자 집을 지었습니다. 처음엔 1인용 돗자리에서 시작한 집이 방석에 베개까지 갖추게 되고, 서로 재산을 늘리느라 집안에 있는 작은 책상과 찻상, 야외용 테이블까지 동원하고 난리를 떱니다. 언제 또 저렇게 놀아보겠나 싶어 그저 흐뭇한 맘으로 바라만 봅니다. 지난 겨울처럼 ‘소낙비’를 한없이 흘려들으면서.

봄이 오는구나 싶게 따뜻한 햇살에도 음지에 언 얼음은 녹을 줄 모릅니다. 집짓기 놀이가 시들해지면 냇가 음지에 폭포처럼 물이 얼어붙은 곳에 매달려 한참씩 놀기도 합니다. 그러다 냇물에 발목을 적시고 오기를 몇 번씩 되풀이 하기도 합니다. 물에 빠졌다고 들어오는 녀석을 보면 ‘발 시리겠다, 얼른 씻고 옷 갈아입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속에서는 빨래 거리 많아졌다고 잔소리 하고 싶은 맘이 굴뚝에 연기처럼 피어오릅니다. 그래도 참습니다. ‘니들이 언제 또 이렇게 놀아보겠니.’ 하고 참습니다. 내 어린 추억에 옷 버린다고 잔소리 들었던 일은 없었던 것 같아 나도 배운 대로 하는 것입니다.

세준이를 보러 오신 세준이 외할머니 덕에 치킨에 과자도 먹었습니다.

하루는 숲속의 헌책방 ‘세한서점’까지 한 40분을 걸어갔습니다. 거기서 오래 된 계몽사판 ‘소년소녀 세계위인전집’ 몇 권을 샀습니다.

또 하루는 걸어서 과방재를 넘어 외갓집엘 갔습니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 주는 재 하나를 넘는 데 1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걸어간 덕에 내 추억 속의 저수지를 보았습니다. 기억 속의 저수지는 무서움이 들 정도로 넓은 저수지였는데, 다시 만난 저수지는 큰 연못 정도로 보였습니다. 세상 살면서 턱없이 보는 눈만 커졌는지, 아님 저수지를 연못으로 여길 만큼 가슴이 넓어진 건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어른 입장에서 보면 어지르는 놀이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정리하라는 말을 달고 살 밖에. 그런데 저희들도 한꺼번에 정리 하려니 힘이 들었던지 이런 말을 합니다.

“야, 우리 5분 놀고 5분 정리하자.”

“우리 정리 하고 다~~놀자.”

결국 하루 종일 어지른 걸 한꺼번에 정리하느라 매일 저녁이면 잔소리를 해야 했지만, 저들 스스로 정리의 당위성은 깨달은 듯합니다. 나의 잔소리는 '해라'와 '하자'사이를 오갔습니다.

하루는 마당 은행나무에 그네를 매어주었습니다.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멋진 그네를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수평이 맞는 가지를 찾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손잡이가 하나고 엉덩이 받침이 없는 외줄그네를 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거기다 아이들은 막대기 하나를 척 걸치고 거기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그네를 잘만 탑니다. 기운 센 어른이 줄을 뒤로 잔뜩 잡아 당겼다가 놓아주면 ‘와!’ ‘악!’ 소리를 지르며 좋아합니다. 어찌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그네를 어른은 꼭 붙들라며 밀어주고, 애들은 좋아라 깔깔대며 잘도 탑니다.

하루는 아이들이 등 뒤에 이름표 하나씩을 붙이고 놉니다. ‘런닝맨’을 하는 겁니다. 술래잡기의 새 이름 ‘런닝맨’.

또 한번은 세준이가 와서 나에게 ‘골드천’을 달랍니다. 보니 아이들이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준이가 말한 ‘골드천’이 황금색 보자기를 의미함을 알았습니다. 세준이에게 ‘골드천’을 찾아주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술래잡기가 ‘런닝맨’이 되고 누런 색 보자기가 ‘골드천’으로 진화해온 세월의 간극을. 세월이 더 흐르면 나의 황금박쥐는 골드박쥐가 될 공산이 큽니다. 그러나 어린이의 순수함은 술래잡기와 런닝맨, 황금과 골드의 간극을 지나 영원할 겁니다. 하리하우스 작은학교가 어린이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든든한 성이 되게 하고 싶다는 꿈을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고요와 평정 속에서 도약과 설렘을 맛보며 지낸 작은학교의 겨울을 반추하며, 다가올 여름방학을 준비합니다.

2012년 6월 7일

하리하우스의 겨울을 추억하며

작은학교 선생님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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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2/06/21 1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릴적 방학의 추억이 기억 납니다.공부한다고 서울와서는 방학에 놀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정말 원없이 즐겁게 놀았던 방학은 시골에서 살때 마지막으로 경험해 본 것 같습니다. 솔바람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어릴적 방학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그때의 기억, 그러니까 30년전 기억인데도 아직 그 기억은 즐겁기만 하네요. 아아들에게 방학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도 부모로써 해야할 일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