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2/06/13 자녀교육에 도움이 되는 책들 (3)
  2. 2012/06/12 <10년 후 세상> (1)
  3. 2012/06/08 <더불어 숲> 을 거닐다.

자녀교육에 관한 책들

같은 또래의 아이가 있으면 소통이 잘 됩니다. 엄마가 키우는 아이건 할머니가 돌보시는 아이건 아이를 사이에 둔 어른들은 나이를 떠나 친구처럼 지내게 됩니다. 말을 붙이기 어색한 사이도 아이가 끼이면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렇게 아이를 통해 더 자연스런 친구가 된 조카가 있습니다. 조카의 아이가 아홉 살, 우리 아이들이 12살. 촌수로 따진다면 저희들끼리는 5촌 아저씨 아주머니뻘 되는 사이인데, 그냥 형 누나 동생하며 친구처럼 지냅니다.

우리 아이들이 하도 동생과 놀고 싶다 졸라서 조카네 집에 갔습니다. 조카네 집 마루에 책이 한 스무 권 쯤 쌓여있는데, 모두 자녀교육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몇 권을 빌려와 읽었습니다.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으레 느끼는 것이지만, 알고는 있는데 실천이 안 되는 ‘좋은 말’이 많았습니다. 그 좋은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것들을 모아봅니다.

<초등학교 때 수학 꽉 잡는 법>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 한 건 교과서의 중요성입니다. 수학책과 수학 익힘책을 꽉 잡는 게 수학을 꽉 잡는 길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엄마 학교>

이 책에서는 내가 하리하우스 ‘작은학교이야기’ 캠프에서 하는 놀이들이 소개되어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교육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저절로 생각해 내는 놀이가 같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놀이로 크는 우리 아이들도 아름답게 성장하리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비맞기 놀이’는 올 여름에 많이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우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바로 주인공이 비 맞으며 노래하는 부분이라 나 또한 아이들 핑계를 대고 빗속에서 놀아보려 계획하고 있습니다.

<엄마학교>에서 ‘자녀를 기르며 자녀로 인해 부모가 울 수는 있어도, 자녀가 부모 때문에 눈물짓게 해서는 안된다.’는 글쓴이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부모는 참고 인내하여 가정을 아름답게 가꿔야 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유태인 엄마의 영재 교육법>

아이교육에 엄마가 차지하는 비중을 이런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늘 바쁘시기 때문에 언제 어느 곳에나 계실 수는 없다. 그래서 어머니를 만드셨다.’

아이 옆에 왜 엄마가 있어야 하는 지를 일깨우는 더 좋은 경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엄마와 아이의 유대관계가 지나치다 싶을 때 ‘끼고 돈다.’는 표현을 씁니다. 더 심하면 ‘마마보이’라는 표현이로 과잉보호를 문제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과잉보호된 아이들의 예로 ‘아인슈타인, 프로이드, 프루스트’를 들고 있습니다. 과학과 철학분야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 ‘과잉보호’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보고 아이들이 스스로 자립하려는 의지를 갖고 독립하려고 할 때 까지 아이들을 ‘과잉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r광잉보호를 해서 천재를 만들겠다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 '과잉보호' 그 자체를 문제삼지 말아야 할 경우도 있다는 것에 동감해서 입니다.  

우리 아들은 아직도 아침 저녁으로 엄마 옆에 누워서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 듣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 것도 비판적으로 보면 일종의 ‘과잉’에 해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대 문호 괴테도 11살까지 어머니가 동화책 읽어 주는 걸 들으며 컸다는 말을 듣고는 스스로 읽는 걸 더 좋아할 때 까지 읽어 주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괴테가 아니라 셰익스피어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학습지 광고에서 ‘과학자 에디슨의 어머니는 아들을 직접 가르쳤고, 대문호 000의 어머니는 11살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주었습니다. 당신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며 ‘학습지를 시키는 어머니가 되라’는 광고 문구에서 얼핏 본거라 괴테였는지 셰익스피어였는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확실한 건 아이가 스스로 글을 읽을 수 있어도 엄마가 읽어 주는 걸 좋아한다면 읽어 주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유태인 엄마의 영재 교육법>에서 또 하나 인상 깊은 내용은 ‘보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책의 작가가 첫 월급을 타서 어머니께 선물을 사서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한다’며 드렸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선물을 사양하시며 ‘네가 나한테 고마운 게 있다면 그만큼 네 자식에게 베풀어라.’ 하셨답니다. 그래서 작가는 어머니께서 베풀어주시고 가르쳐주신 대로 자식에게 베풀고 가르치고 있답니다. ‘세대 간의 진정한 보은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며 나도 내 자식을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 부모들의 7가지 습관>

성공한 자녀를 둔 부모들의 습관을 적은 책입니다. 7가지만 하면 자녀를 훌륭하게 키울 수 있다는 데 누군들 하고 싶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뭔가 특별할 것 같은 습관에 관한 내용이 너무나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 말이 없을 지경입니다. 그만큼 평범한 습관 하나하나가 자녀교육에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기억하려고 메모를 해 두었습니다.

학문의 목적은 성장, 성공, 공헌에 있다. 보통 부모들은 학문을 통해 ‘성공’을 이루라 합니다. 그러나 ‘공헌’할 수 있는 학문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저는 아들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개인적 꿈을 이룬 성공한 사람은 많지만, 사회에 공헌하는 훌륭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사회에 보탬이 되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을 들으면 개인적 성공 후에 사회에 기여하는 법을 고민하는 사람이 될 거라 믿습니다.

<자녀 성공의 key는 아버지가 쥐고 있다>

이 책은 아빠를 위해 빌려온 책인데, 아마 제목만 봤어도 아버지 역할의 무게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책에선 한자 공부를 시키기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추구>라는 책과 <명심보감>이란 책을 사서 아이들에게 맡겼습니다. 겨울방학 며칠동안 <추구>는 외우고 <명심보감>은 읽으라고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놀 시간도 부족한데 한문까지 하면 자칫 한문을 미워하는 아이들이 될까봐 염려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한문이 사랑스러워지면 <추구>도 읽고<명심보감>도 읽겠지 싶은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작은 소리로 아들을 똑똑하게 키우는 법>

책을 천천히 큰 소리로 읽게 하라는 것과 사내아이는 몸으로 배운다는 것을 메모했습니다.

<딸을 세상의 중심으로 키워라>

여성의 감수성이 여성을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게 하는 는 힘이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엄하게 키우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교육법이 딸들에겐 더 적합하다는 내용도 수긍이 되었습니다.

<영어, 낭독 훈련에 답이 있다>

외국어 습득에 ‘큰 소리로 읽기’가 중요함을 강조한 책입니다. 리듬을 살려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소개했는데, 그 중 ‘잠언’(proverbs)을 소개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수준별 영어책 목록이 있어서 도움이 됩니다.

자녀교육에 관한 책은 읽는다고 다 실천하는 건 아니지만, 부모로서 잘못하는 건 없나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참 교육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책을 돌려주며,

“아는 얘기고 쉬운 일인데 책대로 실천하긴 참 어렵지?”

하고 서로 보고 웃었습니다.

조카의 아이들도 나의 아이들도 훌륭한 사람이 되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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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2/06/28 0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녀를 교육하는데 있어서 정도와 정답은 사실 의미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아이들의 교육은 그 아이에 맞춰서 이뤄질때 가장 좋은 것이죠. 눈 높이에 맞는 교육이죠. 그런데 솔바람님 얘기를 들으며 교육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모든 부분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생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만 내가 아들의 눈높이로 맞춰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생활 전반에 걸쳐 아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기 보다 내 눈높이에 아들의 수준을 맞추려는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책을 읽히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를 않죠. 부모의 행동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감이 됩니다. 식사를 할때 잡곡밥이 건강에 좋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잡곡밥은 소화하기 힘든 모래와 같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화하기 힘든 잡곡밥을 강요하는 그런 부모가 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솔바람 2012/06/28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저런 이유로 한참을 들여다 보지 못했었는데, 나그네님 방문 하신 걸 보니 반갑습니다.
    나그네님 댓글 아래에 있는 열 몇개의 장난꾸러기 댓글을 지우고 오는 길입니다.
    그 날 우리 딸은 시험공부를 하느라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었는데, '감히' 누가 우리 딸 이름을 도용하여 장난댓글을 올린 겁니다.

    요즘 우리 딸이 '감히' 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처음엔 아이가 그 단어를 쓰는 게 재미있어 그냥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번 들으니 아이가 '감히' 엄두를 못내는 일들이 많아질까 하는 염려가 드는 겁니다. 그래서 말해주었습니다.
    너에게 '감히'란 없어. 넌 뭐든 할 수 있어라고.
    우리 딸이 지극히 높은 자존감을 갖고 '무엄하도다. 감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입니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야 상대의 인격도 높게 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고수들 끼리의 예도 자존감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하리하우스에 나그네님과 같은 고수가 계셔서 기쁩니다.

    • 나그네 2012/06/29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고수라니요?저는 지금도 배우고 있는 사람인걸요. 저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솔바람님께서 진정한 고수이시지요~

<10년 후 세상>

부모로서 내가 계획해야 하는 세상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 미래를 살아 갈 아이들과 같이 걸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20대가 되는 미래사회에 대한 안목을 갖추고자 <10년 후 세상>이란 책을 샀습니다. 물론 최재천 교수라는 대표집필자가 책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자이면서도 사회적 현상에 대한 안목이 따뜻하다는 느낌을 주는 최재천 교수의 글을 대하는 기쁨이 컸습니다.

<10년 후 세상>은 뇌공학의 발달과 신경윤리학, ‘복제’의 가능성과 윤리성에 대한 문제제기, 의학발달과 의료의 불평등화 가능성. 진화하는 결혼과 10년 후 유망직업군. 종교와 반종교 사이 제 3의 길로서의 영성(spirituality). 녹색 화학의 목표와 인공광합성에 대한 희망 등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논의가 때로는 우려로 때로는 가슴 뛰는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뇌파감지장치의 발달이나 인간복제, 인공장기를 이용한 초장수시대의 도래에 대한 언급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를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과학기술발전에 윤리성이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함은 물론 개인의 판단기준도 역시 윤리성에 기본을 두어야 함을 되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요구, 시대의 변화, 사회적 요구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변할 결혼에 대한 이야기나, 10년 후 유망 직업군, 10년 후 사라질 직업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영성의 문제에 대한 고찰은 미래사회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0년 후 세상>이란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라면 ‘인공광합성’을 향한 인류의 꿈을 읽은 겁니다. 가능하다면 미국의 인공광합성센터를 아이들과 견학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공광합성의 중심에는 태양과 이산화탄소의 새로운 순환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공나무숲에서 나오는 액체연료를 넣은 무공해 자동차가 달리는 멋진 신세계! 에너지의 생산개념을 완전히 바꿀 인공광합성!

어렸을 때부터 바람개비와 환풍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커서 풍력을 이용한 획기적인 에너지 개발을 해내는 과학자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인공광합성 연구에 참여하여 인류가 평등한 햇볕을 쬐듯, 평등한 에너지 사용자가 되도록 하는 데 기여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요즘 아들은 과학시간에 광합성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광합성’이란 단어를 가슴 떨리는 희망으로 받아들이긴 아직 어립니다. 에너지의 고갈의 위험과 에너지원의 편중에서 오는 갈등, 화석연료, 핵연료 사용에서 오는 지구환경 파괴와 같은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아마도 ‘인공광합성’이란 단어를 가슴 떨리는 희망으로 껴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긴 ‘인공광합성’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기득권자를 위한 무기가 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생겨납니다. 모두를 위한 과학. 그런 가치를 아는 사람으로 크리라 기대합니다.

10년 후 나는? 여전히 가족의 먹을거리와 입을거리 장만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평범한 주부의 역할을 하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갖고 있으면 쓸모 있을 법한 자격증 하나를 더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10년 후 세상>의 일깨움 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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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2/06/30 2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학 다닐때 교수님께서 앞으로 개인마다 전화를 한대씩 가지고 다니며 전화를 거는 시대가 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그 말씀을 믿지 않았죠. 종이처럼 얇고 벽에 거는 TV를 볼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셨을때 저는 그 말씀도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때는 미래를 볼줄 아는 안목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제가 그런 기술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니 참 재미있는 일이지요. 앞으로 10년후엔 어떤것이 생겨날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10년뒤, 아니 20년뒤에 우리 아이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제 어린시절 사진을 보곤 합니다. 제 어린 시절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아버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겠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래는 밝고 기대가 되는 꿈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미래에 생길 것들에 대해 아이들에게 얘기해 주곤 합니다.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미래에 대한 꿈을 함께 꿔 봅니다.

<더불어 숲> 신영복 저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읽는 것이 뭐 그리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여행기인 <더불어 숲>을 샀습니다. 단지 신영복이란 이름이 주는 신뢰감이 여행기를 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참 오랫동안 나는 <더불어 숲>을 읽지 못했습니다. 읽으려 해도 읽혀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하고 나서 만난 <더불어 숲>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책장도 술술 잘 넘어갔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생각해 봅니다. 답은 <더불어 숲>과 나의 관계 변화입니다. 제주 여행 이전엔 <더불어 숲>은 그저 하나의 ‘여행기’에 지나지 않았던 겁니다. 비록 숲 안에 신영복 교수의 사상이 녹아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그건 그저 ‘여행기’였던 겁니다. 그러나 제주 여행 이후엔 <더불어 숲>이 ‘지침서’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닌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지침서. 여행은 나를 보이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러 가는 것입니다. 혹은 그곳에 있는 나를 사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을 바라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숲>을 통해 나는 역사 속의 ‘그들’을 보았고, 지도 위의 ‘그곳’을 보았습니다. 여기 내가 신영복 교수의 눈을 빌어 그와 함께 본 것들을 적습니다. 훗날 ‘그들’과 ‘그곳’을 보러 갈 때를 위한 준비입니다.

<더불어 숲 >

- 여행이란 떠남과 만남의 낭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재발견이었습니다.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 다른 사람들의 삶과 그 삶의 방식에 대하여 겸손한 자세로 다가갈 뿐입니다. 그것이 비록 가난하고 납득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 곳에서 삶을 꾸려온 수많은 사람들의 오랜 세월에 걸친 지혜와 노력의 결정이며 그것이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비교되거나 평가되기 이전에 먼저 존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쉽게 관여하는 것은 오만과 무지입니다.

- 여행은 돌아옴입니다. 나 자신으로 돌아옴이며 타인에 대한 겸손한 이해입니다. 정직한 귀향이며 겸손한 만남입니다. 이 정직한 귀향과 겸손한 이해가 없는 한 서로 다른 세계가 평화롭고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길은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 멕시코 - 마야, 아스텍 문명의 고장. 산악 정글 사막 아름다운 해안의 완벽한 자연.

멕시코시티에서 50Km 북쪽에 위치한 고대왕국의 수도 테오티우아칸의 피라미드.

기원전 3세기부터 1000년간 번영했던 도시. 콘스탄티노플이 인구 2만에 불과했던 당시 20만의 인구를 수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 유카탄 반도의 치첸이트사에 있는 쿠쿨칸 신전. 지구 북반구를 4만 3000분의 1로 축소한 피라미드.

- 아스텍의 수도 테노치터틀란을 준공하였을 때 포로 2만 명의 심장을 도려내어 신에게 바치는 인신공양을 했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 마야 비문에 기록된 태양력에 의하면 2012년 12월 23일에 지금의 태양은 종말을 고합니다. 인신공양은 이 다섯 번째의 태양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려는 그들의 간절한 기원에서 비롯된 의식이었습니다.

- ‘인간의 구원은 인간의 희생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인간의 희생으로써만 인간이 구원될 수 있다는 믿음은 정직한 것이었으며 그러한 정직함이 내게 숙연한 반성을 안겨주었습니다. .... 수많은 방법과 이념이 인간 구원의 가치를 내걸고 추구되어 왔음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것도 “피‘로써 상징되는 인간의 희생만큼 순수한 것은 찾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유명한 선언이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사상 역시 신대륙에서 체험한 문화충격의 산물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몽테뉴 역시 그의 <수상록>에서 비록 식인종의 식인 풍습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을 태워 죽이는 것보다 낫다는 주장을 펼치며 종교전쟁에 넋을 빼앗기고 있는 프랑스의 현실을 비판하였습니다. 유럽의 지성사에서 자기만이 올바르다는 페쇄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깨어나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이 신대륙의 삶과 문화였다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안데스 산맥의 일출 - 하루의 아침을 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열고 땅을 열어놓는 장엄함입니다. 태양의 제국 잉카.

- 페루 - 쿠스코. 세계의 배꼽. 잉카제국의 수도. 1533년 스페인 피사로에 의해 파괴당함.

- 설령 피의 제전이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그런 인신공양을 산양으로 바꾸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파괴의 이유로 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파괴 그 자체가 훨씬 잔인하기 때문입니다.

- 문명은 그것이 아무리 조야한 것이라 하더라도 부단히 계승되고 축적됨으로써 비로소 인류의 지혜로 되어 왔다는 문명사의 교훈이 그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떤 문명을 다른 문명으로 대체하는 것은 본질에 있어서 파괴라고 해야 합니다. 대체는 단절이며, 단절은 파괴와 동일합니다. 더구나 문명은 대체가 불가능한 거대한 숲입니다. 한 그루 나무도 옮겨 심기가 쉽지 않은 법입니다. 하물며 거대한 숲이야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 인간복제에 대하여는 강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으면서도 문명복제에 대하여는 너무나 무관심한 세기를 우리는 살고 있다.

- 뜨거운 삶의 현장이 역사의 저편으로 건너가 유적의 시간대로 편입되는 것이 이처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허망함이 또 하나의 공동으로 가슴속에 자리잡습니다.

- 페루 - 잉카 최후의 도시 마추픽추

-길(street)보다는 숲(forest)이 되고 싶다. 나는 이 마추픽추가 숲이 되지 못하고 메마른 폐허로 남아있는 산정이 비극의 어떤 절정 같았습니다. .... 떠나는 것은 낙엽뿐이어야 한다는 당신의 시구가 생각납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잎에게 자리를 내주는 낙엽이 아닌 모든 소멸은 슬픔입니다.

- 녹색의 희망 아마존 . 인간적인 사람보다 자연적인 사람이 칭찬입니다.

- 자연을 입고 먹고 자연의 품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자연스런 삶이 역력합니다. 이들에게는 스스로 만들지 못하면서 소비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 우리는 너나없이 저마다의 강물같은 사연과 뜨거운 정을 안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인간을 예술화 하고 사회를 예술화 하는 미래적 과제는 무엇보다 해방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진부한 틀에서 해방하고 완고한 가치로부터 해방하는 과제입니다.

- 파리 예술의 토양이 바로 다양성과 관용성이라는 데 이의가 없습니다.

- 진정한 예술은 결국 인간과 세계 사이의 깊이 있는 관련을 추구하는 것이며, 어떠한 미래와도 연결 될 수 있는 ‘소통방향’을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클래식은 유럽 최고의 왕가인 합스브르크가를 중심으로 하는 궁정과 귀족사회의 고귀한(?) 정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그러한 고귀한 정서는 곧 사회적 권위가 되고 이데올로기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 오스트리아 - 잘즈부르크(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 도시)에서 기차로 알프스 산맥을 넘는 약 7시간의 여정 끝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산 마르크 광장의 플로리안 카페 - 장자크 루소, 바이런, 괴테, 바그너, 토마스 만, 발레리, 조르주 상드 등 근대 지성의 성지

- 지식인의 탄생은 한마디로 ‘정신의 해방’을 상징하는 것이다.

- 인간을 최고의 완성품으로 보고 인간을 세계의 중앙에 놓는 인간주의가 바로 그리스 문화다. 그리스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인간주위가 외화된 최고의 가시적 현상이 바로 파르테논 신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터키 이스탄불.실크로드의 종착지.

- 우리의 깨달음은 결국은 각자의 삶과 각자의 일 속에서 길어올려야 할 것입니다. ...모든 깨달음은 오늘의 깨달음 위에 다시 내일의 깨달음을 쌓아감으로써 깨달음 그 자체를 부단히 높여나가는 과정의 총체일 뿐이리라 믿습니다.

-네팔 - 히말라야. 이곳 사람들은 정상에 오르는 일이 없습니다. 그곳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입니다 ...그곳을 오르는 것은 마치 없어도 되는 물건을 만들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농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공자의 편력과 고뇌의 산물은 한마디로 군자였습니다. 춘추전국시대라는 난세에 던져진 군자라는 새로운 엘리트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부단히 배우고 실천하며 더불어 함께 하는 붕우집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곤경을 당하고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생각하면 우리의 절망은 오늘의 곤경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거듭 곤경을 당해오면서도 끝내 깨닫지 못했던 우리들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숲>

- 마라톤 평원에서- 내가 우리를 이겨야 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철학이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돌궐과 흉노는 중화라는 벽을 넘지 않고는 결코 온당한 실상을 만날 수 없으며 서구라는 높은 벽을 넘지 않고는 이슬람과 비잔틴의 역사를 대면할 수 없습니다.

- 터키 -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있는 실크로드의 종착지입니다. 터키는 스스로 아시리아,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 비잔틴, 오스만 투르크 등 역대의 장구한 문명을 계승하고 있는 나라로 자부합니다. 카파도키아, 에페소스, 트로이 등지에는 지금도 그리스, 로마의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터키를 모자이크의 나라로 부르기도 합니다.

- 무소유는 간디경제학의 기본 원리이며 근대 경제학에 대한 강한 비판이론입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소유하지 않으며 쌓아두지 않아야 한다는 그의 무소유 이론은 거대 자본의 전횡을 포위할 수 있는 비폭력 불복종 투쟁의 경제학적변용이면서 새로운 세기의 문명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진보는 삶의 단순화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경제학의 비극은 경제학이 도덕철학으로부터 유리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애덤스미스가 ‘도덕감정론’의 세계로부터 도덕철학을 버리고 ‘국부론’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 비극의 시작이라고 하였습니다.

- 진정한 애정은 오만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황제이건 그것이 이념이건 또는 어떤 개인이건 진정한 내정은 일체의 오만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페테르부르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일인들의 사죄는 엄숙할 정도로 철저한 것이 사실입니다. 청산한다는 것은 책임지는 것입니다. 단죄없는 용서와 책임 없는 사죄는 은폐의 합의입니다. 책임짐으로써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청산입니다.

- 사상은 하늘을 나는 새들의 비행처럼 자유로운 것이다.

- 자본주의의 과정은 상품화의 과정입니다. 상품이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항상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입니다. 우리가 뜻을 바쳐야 할 곳은 수단이 아니라 아름다운 대상이어야 합니다.

- 낡은 틀이 와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틀에 대한 분명한 구상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 이것이 진정한 위기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 이상은 추락함으로써 싹을 틔우는 한 알의 씨앗이라는 시구가 생각납니다. 이상은 추락함으로써 자기의 소임을 다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로마에 오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상당한 감성의 앙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로마의 업적을 인류사의 업적으로 보편화하고 그 업적의 일단을 공유함으로써 이곳을 찾아오는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나누어 받게 되는 행복감이기도 할 것입니다.

- 로마제국의 건설과정을 로마인의 용기와 도덕적 힘 그리고 법치라는 미덕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결국 제국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용을 자랑하는 곳곳의 개선문은 어디엔가 만들어놓은 초토를 보여줍니다.

- 우리에게는 우리를 잠재우는 거대한 콜로세움은 없는가.

-로마는 게르만인이나 한니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힘 때문에 무너지리라. 호라티우스

-케냐- 킬리만자로. 5895m아프리카 최고봉. 적도의 만년설.

- 동유럽의 붕괴가 사회주의의 실패라면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은 자본주의의 실패다.

-페루 -나스카 그림. 320제곱Km 평원의 그림

-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은 금세기의 모순을 집약한 것이며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정직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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